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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나 마음혁명 (6)독후감 2023. 9. 27. 05:52
깨달음, 더 많이 놓아버리는 것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앎은 경험을 통해, 느낌을 통해, 깨달음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우리의 존재에 통합적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레스터 레븐슨과의 대담
앎과 느낌은 같은 것입니까?
- 아닙니다. 느낌이 앎 전에 옵니다
느낌 속에 에고가 포함됩니까?
- 맞습니다. 에고는 느낌을 동반합니다. 그것은 좀 더 높은 에고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이중성이 있습니다. '난'는 '감정'을 느낍니다. 앎은 알아차림입니다. 당신은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알아차리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최정점은 모든 알아차림과 모든 존재성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거기 도달하면 존재성과 알아차림은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만이 아니고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다른 몸이며, 모든 다른 것이고, 모든 미분자라는 것을 봅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존재이고 미분자라면 우리는 모든 존재성입니다.
우리는 개념에 묶인 속박으로 '한정 없음'이 가려진 무한의 존재입니다. 이것은 '나는 전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이다'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오류이며 가장 큰 실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과 몸을 전제하면서 이 모든 근심거리와 문제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가정, 억측, 가설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가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거기서 이 모든 진실을 발견하면, 그것은 단지 허구로 드러날 뿐입니다.
우리가 보는 이 모든 세상은 단 한 번도 진짜가 아니었던 환영의 꿈일 뿐입니다.
그러니 왜 근심합니까?
성장이란 바로 모든 유한의 개념들을 없애는 것입니다.
나는, 그 무한한 진자아임에도 불구하고, 속박되어 있고, 몸과 마음을 가졌고, 문제투성이라고 스스로 결정하고 당연하게 떠맡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도, 그것은 단지 추정일 뿐입니다.
생각을 제거할수록 진자아가 드러난다.
- 질문을 하십시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라고 물은 후, 그것 자체가 대답이 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십시오. 마음으로 짓는 생각하기는 결코 답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은 '한계 만들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의식적 생각들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것들을 의식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의식화할 때, 우리는 그들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생각들을 제거하거나 고요히 하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하십시오. '나는 누구인가?' 그러다가 생각이 올라오면 말하십시오. '이 생각들은 누구에게?' 대답은 '나에게' 그러면 이렇게 물으십시오. '그러면 나는 누구?' 대답은 무한의 진자아. 그리고 다시 트랙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당신은 올라오는 생각들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둑어둑한 저녁녘에 길을 걷다가 땅 위에 있는 새끼줄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뱀으로 착각해서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뱀을 어떻게 해야할지 오직 그것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뱀은 단순히 환영림 뿐입니다. 진짜는 새끼줄이죠. 당신은 어쩌면 65년간 인생을 다바쳐 이 뱀 세상과 싸우느라 허덕였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마치 이 뱀과 같습니다. 단지 환영일 뿐인 뱀 말입니다.
내생각
세상은 환영일 뿐인다.. 흠..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고요해지지만, 살아가다 보면 다시 몸에 힘이 들어가는 일들이 많아진다. 내 주장을 펼치고, 감정이 생기고.. 쉽지 않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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